스물아홉, 번지점프를 하다


나보다 조금 먼저 서른을 맞은 친구 하나는 이제 내 인생 봄날은 끝났다며 흥분된 푸념을 터뜨리더니 이빨에 술잔을 딱딱 부딪혔다. 난 외교관이 되고 싶었다고, 그런데 지금은 영어 단어 하나 외우는게 그렇게 힘들다고. 또 다른 친구는 시들해진 머리결을 배배꼬며 말한다. 우리 어디라도 여행갈까? 제주도는 어때? 홍콩은? 좋다고 맞장구치던 목소리가 남은 휴가 날짜 세는 소리에 사그라든다. 난 20대가 가기전에 가장 뜨거운 연애를 해볼꺼야. 이제까지 없던 남자가 며칠안에 덜컹 나타나겠어? 이제 우리가 그런 '꿈'을 꿀 때니? 그나저나 우리가 안지도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네. 만나서 옛날 이야기밖에 할게 없다면 그건 진짜 나이먹은 거라고 우리 엄마가 그러던데. 

10년 전을 돌이켜봤을때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추억거리가 있다면, 당신은 이제 서른을 맞은(넘은!) 것이다. 사실 나에게 십 몇년전을 떠올려 보라고 한다면, 회색 교복에 둘러싸여 밤새 '야자'를 하던, 온전히 내 것이 아닌 시간들만 기억날 뿐이다. 하지만 처음으로 세상이 색깔을 입던 스무살, 난 대학에 들어가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으며 음악에, 여행에, 사랑에 빠졌다. 흑백 사진같던 유년이 가고 처음으로 세상이 빛으로 다가온 그 해 스무살. 나는 손톱만한 상처에도 온 몸을 앓았고, 수 없이 부딪혀도 아픈 줄 몰랐다. 세상에서 가장 커다랗게 웃어보기도 하고, 내버려진 들소처럼 엉엉 울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나는 나의 새파란 젊음이 매일매일 짜릿했다. 


girl's talk
girl's talk by open-arm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아홉'이란 이상한 숫자다. 구구단, 구미호, 아홉수, 아침 혹은 밤이 시작되는 아홉시, 중국에서는 천수를 누리라는 뜻으로 아홉을 사용하고 일본에서는 괴롭다는 의미로 아홉을 부른다. 끝도 아니고 시작도 아니고, 넉넉해 보이지만 늘 하나가 모자라다. 완성과 미완성의 표현이며 진입과 후퇴를 상징하기도 한다. 스물아홉도 그러하다.

스물아홉, 나이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적은 것도 아닌, 이제 더 이상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허용되지 않는 나이다. '사회적 어른'까지는 아직 2% 부족하기만 한데 자의가 아닌 많은 것들이 등을 떠밀기 시작한다. 도전이나 모험보다는 경력과 안정을 요구받고, 세상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돌아간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꿈을 이야기할 때 조금 망설이기도 하고, 내일을 말하며 조심스러워하는, 여름과 가을 사이처럼 코 끝 시큰해지는 나이다.

술잔을 부딪히던 친구가 곯아떨어진다. 고개를 까딱이며 땅콩을 뒤적이던 다른 친구는 내게 마지막 20대를 맞아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묻는다. 글쎄, 그것을 꼭 기념해야할까. 그래도 굳이 정하자면 번지점프나 스카이 다이빙? 사람 목숨이 아홉개는 안되지만 비슷한 경험 한번쯤 해봐도 재미있지 않겠어?!

또 다른 소멸과 새로운 시작을 맞아, 굳이 무언가를 기념해야한다면 솔직히 '뜨거운' 것이 제격이다. 촛불 켜진 와인 잔 앞에두고 새로 바른 손톱을 만지작대며 과거를 곱씹는 것이 아니라, '죽기 전에 해야할 일' 목록의 253번째 일을 시작해보는 것. 나의 기념식이란 응당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 







* 오래된 나를 버리는 가장 원초적인 방법, '번지점프를 하다'

가고싶다, 퀸스타운. 최초의 번지 점프대는 뉴질랜드 남섬의 퀸스타운 Queenstown, 와나카 마을의 카와라우 Kawarau 번지대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의 마지막 장면으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마을 주변에 스카이 다이빙을 위한 경비행기 활주로가 있다. 1988년 번지점프를 처음 상업화하여 만든 해켓 A.J Hackett이 바로 이 퀸스타운 출신이라고 하며 43m 높이의 카와라우 다리 중앙에서 번지! 뛰어내렸을 때 두 팔이 물에 살짝 닿는 정도의 길이, 혹은 상체가 물에 완전히 빠지는 정도의 길이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 

저 사진을 찍은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사진 속 분홍색을 입고 있는 리사는 번지 점프 대 앞에서 20여분동안 패닉에 빠져 힘들어 했다고 한다. 그런데 왜 신청했냐고? 부주의하고 걱정이 많은 성격의 스스로를 시험하고 싶었단다. 



드디어 번지! 



짜릿함은 순간. 리사는 구조대원의 도움을 받아 허둥지둥 평지로 되돌아왔다. 
"다시는 저거 안해!" 그래도 장하다, 리사. 




우리나라에도 있다. 이왕이면 가장 높은 곳으로 가자. 
인제 내린천 합강정 번지점프 63M. 
http://www.injejump.co.kr
 
이용요금: 앵클번지 40,000원, 바디번지 35,000원 (10인이상 10% 할인)
문의 전화: 033) 462-5163/ 462-5263 (여름 성수기) 033)461-5216 / 462-5217(연중) 



그래, 싹 버리고 오는거다, 가장 원초적인 방법으로. 코 앞으로 다가온 서른, 잔치는 끝났다고 누군가 읊었지만 끝나면 또 다시 시작하는게 세상 아니던가. 봄이 가면, 여름이 온다. 끝나면 시작하고, 떨어지면 올라가고, 무너지면 다시 세우면 된다. 스물 아홉. 





  1. Favicon of https://semiye.com BlogIcon 세미예 2010.12.25 21:34 신고

    아홉수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더군요.
    잘보고 갑니다.
    우수블로그 선정 축하드려요.

    • Favicon of https://mephisto9.tistory.com BlogIcon Demian_K 2010.12.27 13:24 신고

      감사합니다:-) ㅎㅎ즐거운 연말 보내고 계신가요? 항상 세미예님 블로그 구경 잘하고 있습니다. ^^

  2. 2010.12.27 15:41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mephisto9.tistory.com BlogIcon Demian_K 2010.12.27 16:39 신고

      좋아욧!ㅎㅎㅎ1월 중 구체적으로 날짜 잡아요 우리.ㅎㅎ 개인적으로는 토요일이 제일 좋구요. 뭐 먹고싶은지 생각해놔요.ㅎㅎ연락할께요!

  3. Favicon of https://iguardian.tistory.com BlogIcon 제너시스템즈 2010.12.28 11:45 신고

    저도 내년에 29이 되요. 26,27,28은 불안감이 없었는데 이제 29이 되려니 너무 불안합니다. 서른이 되면 무언가가 되어있어야 할 것같거든요^^;; 저도 29이 되면 번지점프를 해야겠어요^^ 허허허~ 그리고 티스토리 우수 블로그에 선정되신걸 축하드려요~^^

    • Favicon of https://mephisto9.tistory.com BlogIcon Demian_K 2010.12.28 11:46 신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너님도 마지막 20대를 맞으시는군요....아무렇지 않다가도 은근은근 기분 묘해지는게....여튼 우리 힘내요!!!! 우린 잘 할수 있숴여!!!!ㅠㅠㅠ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ㅋㅋ

  4. Favicon of http://misxh.com BlogIcon mixsh 2010.12.29 14:47

    2년 연속 우수블로그 선정 축하드려요:)
    2010년을 이틀 남겨둔 오늘, 포스팅이 팍팍 와닿네요~
    번지점프 사진도 구경 잘하고갑니다:D

    • Favicon of https://mephisto9.tistory.com BlogIcon Demian_K 2010.12.29 18:44 신고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자주 뵈어요^^/ㅎㅎ

  5. intolife 2011.01.16 04:12

    다른 분들은 29을 맞으시는 데, 저는 올해 39이네요.
    같은 아홉으로 저도 껴주세요 ^^a

    • Favicon of https://mephisto9.tistory.com BlogIcon Demian_K 2011.01.17 10:37 신고

      전 올해 서른입죠. 예.ㅋㅋㅋ같은 30대(?!)예요! 반갑습니다.ㅋㅋㅋㅋㅋ

  6. intolife 2011.01.17 20:11

    네. 같은 30대시네요. ^^a
    30대가 된 게 엊그제 같은 데, 정말 시간이 유수와 같네요.
    세월은 기다려 주지 않는 다고 하는 데, 정말 젊고 시간이 있을 때 하고 싶은 걸 더 많이 해야 할 것 같네요.
    이제는 슬슬 젊지도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요. ^^

  7. 2012.04.04 19:52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mephisto9.tistory.com BlogIcon Demian_K 2012.04.06 12:24 신고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댓글 너무 감사하고, 감동적으로 읽었어요.ㅠㅠ 이런저런 이야기, 댓글로 쓰기는 좀 그렇고 메일로 보내드리고 싶은데 괜찮으시면 비밀댓글로 메일주소 부탁드려도 될까요? 제 어릴적을 보는 느낌이라. 흑. 다시한번 글 남겨줘서 고마워요!ㅠㅠ 답글 기다릴께요!^^

    • 2012.05.03 09:44

      비밀댓글입니다

  8. 최민 2013.10.09 00:35

    잘 읽고 갑니다., 이따금씩 생각하며 어느새 잊고 있었던 번지점프가 하고싶어지네요~ 저도 올해안에 도전해봐야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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