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소였고, 소가 그였다. <워낭소리>



그가 소였고, 소가 그였다. 부러질 듯 가느다란 다리를 이끌고 짧은 숨을 토해내며 온 몸으로 땅을 일구는 늙은 농부와 기적 같은 40년을 그와 함께 한 이름없는 소. 소는 할아버지에게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농기구이자 자동차이고 가족이자 친구이고 삶이고 생명이다. 할머니는 한 평생 농약 한번 친 적 없고 변변한 기계없이 소 농사만을 고집하는 할아버지의 ‘미련함’을 탓하지만 할아버지는 매일 어김없이 소를 끌고 논으로 나간다. 그렇게 30년이 흘렀다.

빛과 비와 밭과 바람과 길 모두 그림 같은 깊은 산골 마을. 할아버지는 직접 꼴을 베어 죽을 쑤고 약초인 민들레를 뜯어와 소를 먹인다. 할머니의 딸랑방울 같은 잔소리는 못들어도 소 목에 매달아놓은 바람 같은 워낭소리에는 몸을 일으킨다. 나이만큼 지친 소 역시 제 몸 가누기도 힘들지만 밤새 내린 비에 외양간 지붕이 무너져도 할아버지를 깨우지 않으려 묵묵히 그 비를 맞고 서 있을 정도로 우직하다. 부러질 듯 휘청대는 가느다란 소 다리는 할아버지의 다리와 똑같이 검게 굽어있다. 둘 다 곧 쓰러질 듯 한 걸음 걸음을 우겨지며 걷지만 이 오래된 파트너는 항상 아무 말이 없다. 짐을 나눠들고, 서로 오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고물 라디오의 치그덕대는 음악도 같이 듣고, 마을 모임에도, 병원에도, 사진관에도, 비가 오나 볕이 드나 그들은 늘 함께다. “내가 남편을 잘못만나 이 고생을……” 할아버지와 똑같은 눈을 한 소가 느릿느릿 고개를 젓는다. 할머니의 노랫가락 같은 불평소리에 모르는 척 고개를 돌리는 것은 할아버지뿐이 아니다.




‘고맙다, 참말로 고맙다;’ 이 영화가 이토록 고맙고 또 고마운 이유는 고집스럽도록 우직한 노동과 위대하도록 평범한 삶의 진득함을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흐드러진 산줄기와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흙더미들, 발갛게 익은 고추와 내리치는 빗방울들, 산과 들의 일부로써 살아가는 마을 주민들과 어미보다 늙은 소를 챙기는 장난꾸러기 송아지, 세대교체를 주장하는 젊은 소와 이른 봄 유채꽃처럼 해맑은 할머니까지, <워낭소리>에서는 이 모든 것이 함께 있기에 온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간이 흐르고 소는 죽었다. 할아버지는 소가 마지막으로 해 놓은 땔감 무더기와 남겨놓은 워낭을 바라본다. 소는 떠났다. 하지만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젊은 소가 킁킁대며 새로운 길로 할아버지를 이끈다. 할아버지는 소를 묻은 흙 무덤 앞에 잠시 멈춰 앉아 낡디 낡은 워낭을 꺼내본다. 딸랑딸랑. 세상에서 가장 맑고 슬픈 소리가 난다.  ‘사람은 가끔 마음을 주지만, 소는 언제나 전부를 바친다’. 워낭소리.





  1. intolife 2009.03.05 01:01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얘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뭉클 해 지더군요.
    저 영화가 상영된 이후 사람들이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사시는 곳에 찾아가서 귀찮게 하는 것 같은 데, 그런 일은 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의 집으로 할머니께서도 하도 사람들이 찾아와 귀찮게 해서 피신을 갔다는 얘기도 있고요.
    그냥 영화로만 감동을 느끼면 되지 찾아서 귀찮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모르겠네요.

    보고타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 곳 워싱턴에도 봄이 얼마 안 남은 것 같네요.
    사람들이 봄과 같이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건강하세요.

    • Favicon of https://mephisto9.tistory.com BlogIcon Demian_K 2009.03.05 01:44 신고

      가족들과 함께 워낭소리를 보았는데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혼났네요.
      저도 저 영화속 주인공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관광상품'화 하려는 지역 군청의 일이나, 함부로 찾아가서 귀찮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어요. 도대체 왜그러는지 이해가 안가요. 영화 잘보고 왜 굳이 찾아가 그분들의 생활을 방해하는지 진짜 개념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것 같아요. 에휴

      워싱턴 날씨도 많이 따뜻해졌나요? 보고타도 많이 풀리고 있긴한데, 여전히 매일 내리는 비 때문에 쌀쌀하긴 하네요.

      멋진 하루 보내세요^^ 겨울 끝자락에 감기 조심하시구요!

  2. 나프록센 2009.03.07 19:00

    한국에 있는 저도 못본 영화를 보셨네요^^;
    콜럼비아는 잘 들어가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제 몫까지 좋은거 많이 보고 느끼시길 빕니다.

    그건 그렇고 관광상품화 얘기듣는 순간 정말 천민자본주의가 뭔지 확실하게 보여주는구나
    정말 정떨어진다 대한민국 이란 느낌이었습니다.

    후.....

    건강하세요!

    (블로그 새단장하셨네요. 아직은 낯설어요^^)

    • Favicon of https://mephisto9.tistory.com BlogIcon Demian_K 2009.03.08 03:01 신고

      진짜 뉴스들 보며 정이 뚝뚝 떨어지더라구요. 옛날에 산골소녀 영자인가...결국 사람들때문에 아버지 돌아가시고 비구니가 되어 세상에 고개돌린 소녀 이야기도 생각났구요. 진짜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어휴

      그리고 봄이라 블로그를 새로 단장해봤는데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네요-_-; 우선 본문 폭이 너무 좁고 그림이나 글이 잘려서 보기 싫어요.ㅠ 함 바꿔보긴 했지만 곧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것 같습니다. 흑흑

      나프록센님도 건강하세요! 꽃샘추위 있다는데 감기 조심하시구요.^^

  3. 2009.03.13 06:46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mephisto9.tistory.com BlogIcon Demian_K 2009.03.15 01:38 신고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지금 보고타에서 여행쪽으로 일하고 있어요. 그나저나 콜롬비아에 다녀오신 적이 있다니 제가 더 반가운데요^^메데진은 아직 못가봤지만 나중에 들를수 있다면 말씀하신 곳도 한번 주의깊게 알아봐야겠네요^^
      여튼 반갑습니다. 자주 놀러오세요!^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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