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다보면 수많은 동물들과 만나게 된다. 개와 고양이는 물론이고 말과 양, 낙타부터 뱀이나 두꺼비, 이름모를 동물들까지. 사진첩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그들을 보고 있으면 잠시 잊고 있던 여행의 기억들까지 함께 떠오른다.

어떤 모습이라도 좋다. 사진과 함께했던 동물들은 때로는 나른한 표정으로, 혹은 콧김을 잔뜩 내뿜던 모습이나 때로는 애처롭고 지친, 혹은 여행온 이방인에게 몸을 비비는 애교 가득한 모습으로, 함께 기대어 잠을 자거나 함께 노래를 부르거나 앞서거나 뒷서거니 여행길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모습들 등 다정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사랑스러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또 다른 친구들은 그렇게 나그네의 길 곁에서 언제나 알짱알짱 함께하고 있었다.





시작은 티벳이다. 마니깐거라는 이름의 오지에 가까운 작은 마을을 찾은 이유는 신루하이라는 놀랍도록 아름다운 호수 때문. 빙하가 녹아 생긴 시리도록 새파란 호수의 아름다움에 빠져 목숨을 잃은 한 왕비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루종일 바라만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 쪽빛이다. 넋을 잃고 반나절을 앉아있으니 날 태우고 온 저 말이 이제 그만 가자는 듯 푸르렁댄다. 말을 끄는 가이드 꼬마와 초콜릿을 나눠먹으며 넌 이곳에서 매일 저 호수를 볼수 있을테니 부럽다고 하자, 자기는 이곳에 사는게 지루하지만 그렇게 말해주니 행복하다고 한다. 말을 달래며 다시 길을 떠났다.





사천 서쪽 끝 더꺼에서는 라싸보다 더욱 전형적인 티벳과 티벳인들을 만날 수 있다. 티벳을 지나며 끊임없이 볼 수 있는 마오니우(야크). 굉장히 힘이 쎄고 고기의 질도 좋으며 아주 유용해 티벳인들의 생활과 떨어질 수 없다. 새까맣거나 갈색 얼룩이 있는 마오니우는 괜찮지만, 하얀색 마오니우는 털이나 고기 등급이 떨어져 단지 관상용으로만 사용한다고 한다. 귀엽게 생겨서 만져볼랬는데 성질이 사나워 뿔에 받쳐죽을 수도 있다고 한다. 만질까 말까 고민했던 내 소심함에 안도했다.





캄보디아 씨엡립의 한 사원. 쨍쨍한 한 낮, 늘어져있는 개 한마리. 꿈쩍도 않고 달게도 자고 있었다.





티벳주 참도시의 잠파링 사원. 눈이 아플정도로 뜨거운 한낮, 역시나 사원의 개. 이 세상 부러울 것 없다는 표정으로 늘어져 있다. 라마승의 붉은 빨래가 바람에 날리고, 손님이란 나밖에 없던 그곳 유일한 말동무 상대였는데. 누렁이는 눈 한번 끔쩍하더니 다시 철퍼덕 누워 버렸다. 우리나라 절에서도 느꼈는데, 사원의 개들은 정말 부러울 정도로 여유로워 보인다. 부처님과 생활하더니 부처가 되었나.





터키 카파도키아, 수천년에 이른 풍화작용으로 기묘한 버섯모양 바위가 즐비한 괴뢰메 마을. 스타워즈의 광선검을 든 전사와 초록색 외계인이 출몰해도 이상할 것 없어 보이는 신비한 도시. 마을의 전경을 보러 올라간 뒷산에서 손바닥만한 아기 고양이를 만났다. 세상을 관조하는 표정으로 저 멀리 망망 바위섬들과 그 바위에 부딪히는 바람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던 아기 고양이. 달래고 얼러도 꿈쩍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던 작은 고양이는 끝내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





형제거나 친구? 풀도 줄맞춰 먹고 줄맞춰 산책하던 스위스 알프스의 소들. 심지어 색깔까지 조화를 맞췄다. 인간도, 동물도, 바람도, 햇볕도, 자연 속에서 따뜻한 일체감을 느낄 수 있던 스위스의 품위있는 조화로움. 우리나라에도 이보다 더 아름답고 아름다운 산과 들이 많은데. 깎고 뚫고 넓히고 부수고 사들이는 것밖에 모르는 대한민국 건설 정책에 심한 유감을.





쌩뚱맞게 등장한 치킨 인형들! 오스트리아의 명물 슈니첼을 만들던 가게에서 찍은 닭들이다. 돈까스처럼 튀김가루 입힌 고기를 바삭하게 튀겨 만든 슈니첼이 너무 맛있어 삼시세끼 이것만 먹고 돌아다녔던 기억이 떠오른다. 노릇하고 고소한 치킨까스 냄새가 진동하던 빈의 한 작은 음식점. 사진의 통닭 인형처럼 동그랗게 배 나온 아저씨와 수줍게 웃던 예쁜 미소의 아주머니, 그리고 정성껏 곱게 튀겨진 슈니첼 한 조각은 오스트리아 여행길 중 가장 고소했던 하루를 선물해주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올리브 산이나 골든게이트에 오르다보면 종종 성경에서 본 듯한 양이나 말들과 마주치게 된다. 사람이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고 멋지게 포즈를 취해주는 장난스런 표정의 어린 양, 그리고 주인을 닮은 듯 그와 삶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겠다는 처연하면서도 굳센 표정의 말. 신과 인간이 공존한 그 시간을 기억하듯 그들의 표정에도 도시를 휘감은 사원의 묘한 향내음이 함께 난다.





콜롬비아 산힐, 호스텔 라이카의 마스코트 라이카를 안고 있는 미소년 마누엘. 엄마와 개까지 셋이서 눈이 똑같이 생겼다. 부모가 헤어지고 엄마와 둘이 살고 있는 아홉 살 마누엘은 얌전한 듯 똑똑한 아이인데 조금 친해지자 일분 일초도 쉬지않고 우리에게 장난을 쳐대던 엄청난 장난꾸러기였다. 그러나 호스텔에 오는 수많은 손님들을 엄마와 함께 점잖게 챙겨주던 믿음직한 녀석. 마누엘의 동생이자 둘도 없는 친구 라이카는 마누엘의 심한 장난을 다 받아주며 언제나 그의 옆에서 꼬리를 흔들었다.





내몽고의 사막에서 처음 낙타를 타보았다. 인공적으로 느껴질만큼 누런 모래와 바람뿐인 몽고의 사막. 바람이 심해 꽁꽁 싸맸어야하는데 사막에 왔다는 흥분에 넋놓고 돌아다니다 다음날 코, 귀, 입 등 온몸에서 모래가 쏟아져나오는 진기한 경험을 했다. 내가 탄 낙타는 자꾸 침을 뿜어대며 똥을 누었다. 혹 부분이 생각보다 물렁해서 앉아있는게 불편해 자꾸 떨어질 뻔했지만 낙타를 처음 타보았다는 흥분은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이봐, 너 여기 처음 왔구나? 내가 이쪽 섬에 오래살아서 하는 말인데, 여기는 그리스 신들이 태어나고 자란 미코노스섬이야. 그쯤은 알고 있겠지? 하얀 풍차랑 파랗고 나지막한 집이랑 노을 진 붉은 에게 해가 어우러지면 얼마나 멋있는 줄 알아? 신들의 이야기가 펼쳐지기에는 최고지. 낭만과 사랑, 열정이 넘치는 로맨틱한 곳을 찾기위해 여길 왔다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꺼야. 바람도 엄청 세니까 감기도 조심하라구. 근데, 그 수블라키 한 입만 주고가면 안될까?





폭신한 두 발을 얌전히 모으고 앉은 흰 고양이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땅에 끌린 두툼한 배 위에 손(발!)을 얹고 늘어진 자세로 앉아 만사 귀찮다는 표정으로 꾸벅꾸벅 졸고있는 검은 고양이의 포즈는 주변의 누군가를 닮은 것도 같다. 모두가 나른해져있는 중동의 오후, 햇볕 역시 졸고 있는 듯하다.





이스라엘 베르샤바, 키부츠 쨀림에 살던 길강아지 해리. 항상 저렇게 땅에 배를 깔고 앉아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었던 착하고 의젓한 녀석이다. 착한 콜롬비아 아가씨 마르셀라가 1년 넘게 애지중지 키웠지만, 그녀가 떠나고 해리는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했다. 길에서 사는 동물 수가 급격히 늘어나자 사람들이 그들을 잡아 보호소에 보내고, 입양이 안되면 결국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르셀라가 떠나고 나도 떠나고, 뒤늦게 해리를 봐주던 파멜라도 떠났다. 해리는 아직 그곳에서 석양을 보며 컹컹거리고 있을까.

  1. Favicon of https://www.kimchi39.com BlogIcon 김치군 2008.11.05 18:53 신고

    트랙백 도장 찍고 갑니다 ^^

    • Favicon of https://mephisto9.tistory.com BlogIcon Demian_K 2008.11.06 01:19 신고

      블로그 오픈한지 얼마 안됐는데 첫 리플에 첫 트랙백을 장식해주셨네요. 고맙습니다^^ 김치군님 블로그 가끔 가서 구경하기도 했는데 이렇게 뵈니 또 반갑네요^^

  2. Favicon of https://myusalife.tistory.com BlogIcon 샴페인 2008.11.08 08:19 신고

    그런데 티벳 현지인과의 대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중국어? 티벳어? 영어?

    • Favicon of https://mephisto9.tistory.com BlogIcon Demian_K 2008.11.08 09:39 신고

      티벳인들은 티벳어를 쓰긴 합니다만 간단하게 중국어를 하는 경우도 많기때문에 보통 중국어로 대화합니다^^ 이 게시물 다시 읽고나니 다시금 중국이랑 티벳이 가고싶어지네요~

  3. intolife 2008.11.17 08:54

    검은 고양이의 포즈는 예술이네요 ^^*
    어떻게 저런 자세가 나올 수 있는 지 궁금하네요.
    개 누워있는 자세는 태국에서 길가에 널부러져 있던 개들과 비슷한 것 같네요.
    차가와도 '니가 알아서 피해가겠지'라는 표정으로 길을 건너던 개들이 생각나네요. ^^

    • Favicon of https://mephisto9.tistory.com BlogIcon Demian_K 2008.11.18 01:35 신고

      ㅋㅋㅋ딱 그 표정대로죠. '니가 알아서 피해가라..' 이런거...ㅋㅋ 좀 더운 동네 동물들은 대부분 저렇게 느긋한것 같더라구요. 툭툭 건드려도 꿈쩍않하고 누워있는 폼이라니...^^ 한국같았으면 복날의 공포(?!)덕인가 길 강아지들이 저렇게 맘편히 누워있지도 못할텐데 말이죠. ^^;

  4. Favicon of https://paarang.tistory.com BlogIcon ahnjinho 2009.01.11 02:30 신고

    개는 너무 친근한게 친구하고 싶어요~호홋!

    그너자너 고양이 자세가 완전 끝내주는군요.ㅎㅎ ㅣ

    • Favicon of https://mephisto9.tistory.com BlogIcon Demian_K 2009.01.11 13:23 신고

      개인적으로 고양이를 엄청 좋아하는데, 요즘 지내는 숙소에 강아지들이 너무 예뻐서 또 개의 매력에 빠지고 있지뭐예요.ㅋㅋㅋ
      말씀하신대로 개는 친근한게 매력인것 같아요. 얼마나 이쁜지~~ㅎㅎㅎ

  5. Favicon of http://www.jaredjewelersnew.com/jared-jewelers BlogIcon jared jewelers 2011.07.12 22:20

    그런데 티벳 현지인과의 대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중국어? 티벳어? 영어?

    • Favicon of https://mephisto9.tistory.com BlogIcon Demian_K 2011.07.13 09:42 신고

      완전 시골에는 티벳어를 해야겠지만, 관광지에는 보통 중국어가 통해요. 영어는 중국에서 거의 안통하구요. 여튼 전 중국어로 다 대화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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