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있는 풍경, 내 달콤한 아지트 


나만
알고 싶고 나만 가고 싶은 그런 곳이 있다. 멋진 여행지나 스팟을 찾아 소개하는 것이 일이었지만 마지막까지 내 손에만 쥐고 싶은 그런 곳이 있다. 조금 욕심 내도 좋을 만큼 예쁜 곳, 혹은 그 누구에게도 방해 받고 싶지 않은 비밀스러운 곳. 내가 좋아하는 단 몇 사람들만 초대해서 조용조용 시간을 보내기 좋은, 나만의 아지트. 마음이 복잡한 날, 책 한 권 끼고 들어서면 언제나 그림처럼 고즈넉한 풍경이 펼쳐졌다. 중남미 전통가옥 스타일로 꾸며진 오픈 정원 아래 나무로 된 탁자와 작은 소파가 있고, 미술을 공부하는 주인 아주머니 딸이 그렸다는 강렬한 색깔의 그림들이 걸려있다. 한켠으로 고서적이 잔뜩 꽂혀있는 작은 방이, 저 유리창 너머로는 빵 굽는 요리사들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낡은 기둥에 매달아놓은 꽃나무 잎사귀가 바람에 팔랑거리고, 적당히 게으른 선율의 음악이 느린 오후처럼 흘러간다.
 
 

 

 

 

Café de la Peña Pastelería Francesa. 나는 그냥 프랑스 베이커리라 부른다. 이곳은 프랑스 스타일의 디저트와 빵, 커피를 파는 콜롬비아 보고타 올드시티의 작은 커피숍이다. 누가 알까, 혹은 너무 유명해질까 두려워했던 나만의 장소. 일거리를 싸안고 들어가기도 하고, 온 몸을 늘어뜨리며 쉬러가기도 한 곳. 몇 명의 친구들과 수다떨러 가기도 하고 단순히 이 집 고양이가 만나고 싶어서 이 곳을 찾기도 했다. 들이치는 한 낮의 소나기를 피하러, 혹은 느릿하게 흘러나오는 팝 음악을 들으러. 새로 데려온 새끼 강아지를 인사시키러 가기도 하고, 카라멜 타르트 한 상자를 사러 가기도 했다. 따가울 정도로 진한 초콜릿 빵과 찌르듯 강렬한 에스프레소는 나의 단골 메뉴. 그저 무덤덤한 날은, 깔끔하고 개운한 띤또 Tinto(콜롬비아식 아메리카노)를, 소파에 파묻혀 어리광 부리고 싶은 날은 우유와 시럽을 넣은 산딸기 주스를 시켰다. 갓 구운 크로와상이나 땅콩과자, 사과 파이가 카페 안을 감아돌며 달콤한 냄새를 풍겼다.

  

 

 

 

나는 언제나 조금 지친 상태로 이곳을 찾았다. 매일 디저트 빵을 한 두 개씩 사가는 단골 할아버지가 눈인사를 하고 지나가면, 손님들이 다녀간 식탁 사이를 기웃거리던 고양이 라슈민이 내게 다가왔다. 늘어진 내 다리께 스윽 몸을 비비며 지나가는 그 도도한 녀석은 언제나 무심한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내 가방 끈에 매달린 작은 리본을 붙잡거나 의자 사이를 오가며 촘촘히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종종 서로에 대한 관심이 지나쳐 손등에 가느다란 발톱자국이 남기도 했지만, 그녀는 언제나 의젓한 자세로 나를 위로해주었다.

 

 

 

 

 

이제까지 내가 원한 것은 무장한 군인같은 맛의 진짜 에스프레소였다. 짜릿하게 치고 올라오는 강한 맛, 짜르르 쏘아붙히는 새카만 노여움과 부르르 떨리는 괴로움이 한 샷, 칼 같이 담겨있는 에스프레소. 삶이라는 전투에서 싸우려면 사실 이런 것이 제격이다.

 

하지만 서류뭉치 더미와 덜 마신 찻잔을 앞에 두고 멍 하니, 라슈민이 남겨놓은 회색 헝겊인형 조각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뭔가 다른 생각이 들었다. 이어폰을 끼고 고개를 까딱거리며 앉은 맞은 편 친구의 취향대로 시럽을 듬뿍 넣은 카푸치노가 앞에 있다. 구름같은 우유거품, 끈적한 초콜릿, 쌉쌀하게 들러붙는 계피가루, 달콤한 세상 한 모금 맛보라고 눈웃음치는 이 다갈색 거짓말.

 

 

 

 

  

덜 마신 에스프레소 잔을 내려놓고 카푸치노 한 모금 슬쩍, 맛을 본다. 따뜻한 느낌이 커피향 가득 차오른다. 슬픔이 달콤하게 분해된다. 라슈민이 가르릉가르릉, 기분좋은 소리를 낸다. 그렇다. 언제나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카페 델라 뻬냐 Café de la Peña, '산위의 카페' 라는 뜻이지만 이름의 에녜~표시를 빼면 '슬픔의 카페 Café de la Pena'로 뒤바뀐다. 이곳은 치유의 힘을 가진 고양이와 슬픔을 조각내는 커피향 감도는, 나만의 달콤한 아지트다. 카페. 델 라, 뻬나.

 

 

 

 






  1. Favicon of https://hannahscafe.tistory.com BlogIcon 해나스 2011.07.06 11:33 신고

    정말로 침범하고 싶은 아지트로군요.
    혹시나 서울일까 했더니 역시 보고타.
    가보고 싶은 보고타...
    멀리 쳐다보고 있는 고양이의 그윽한 눈길이 매력적입니다.

    • Favicon of https://mephisto9.tistory.com BlogIcon Demian_K 2011.07.07 17:11 신고

      해나스님 안녕하셨어요?^^ 참고로 저 아직 한국입니다(소근소근)ㅋㅋㅋㅋ 언제 보고타에서 커피 한잔 함께 할 날을 꿈꾸며...^^

      시원한 하루 보내세요!!^^/

  2. 2011.07.06 16:23

    바이바이...

  3. 하늘고래 2011.07.06 21:09

    어 여기가 나눠주신 맵에 가보라고 추천 해놓으신 그 프랑스 까페아닌가요? 혼자만 알고 싶으시다면서 투숙객들에게 무한 홍보를~ㅋㅋ
    밖에 지나가면서만 보고 안에 들어 가 보진 않았었는데..이렇게 좋을 줄이야~

    깐델라리아 지역의 숙소건 까페건 다 올드한 건물이어서 다 멋있지만 이렇게 글 올려 놓으시니 저곳에서

    커피와 케잌을 즐기지 못 한것이 아쉬워지네요.

    한국와서 젤 그리운건 여관에서 마시던 띤또 한잔. ㅜ.ㅜ 후안 발데스로 한국에서 끓여도 그맛이 안나요..

    • Favicon of https://mephisto9.tistory.com BlogIcon Demian_K 2011.07.06 21:32 신고

      ㅋㅋㅋㅋㅋ기억력 좋으시네요^^ 사실 처음엔 안적었다가, 막판에 만들어 적어넣었어요. 근데 후안발데스나 오마부터 가는게 더 좋으니까 대놓고 추천은 안했다능....히히힛

      잘 지내시나요?^^ 저도 갑자기 에코노 띤또가 땡기네요.ㅎㅎ

  4. Favicon of http://blog.daum.net/capri1 BlogIcon 싸장님 2011.07.07 15:24

    콜롬비아만 보고 들어왔는데
    마지막으로 다녀온게 2002년인가 그래요..
    일때문이지만 일년에 4번씩 다닌거 같은데
    그때 기억이 나서 들어와봤네요~

    • Favicon of https://mephisto9.tistory.com BlogIcon Demian_K 2011.07.07 17:10 신고

      안녕하세요^^ 그때 그 기억 그대로신가요?^^ 많이 변했을꺼예요 아마. 종종 놀러오세요. 콜롬비아 풍경들 더 올려볼께요~

  5. Favicon of https://elankim.tistory.com BlogIcon BUM JU KIM 2011.07.09 10:28 신고

    가면 들러서 느긋히 냥이님을 바라보고 싶네요 ㅎㅎ

    • Favicon of https://mephisto9.tistory.com BlogIcon Demian_K 2011.07.10 01:10 신고

      네^^ 냥이님과 커피한잔~ㅎㅎㅎ

      음악도 좋고 분위기도 좋고 넘 좋은곳이예요^^

  6. Favicon of https://lovebp.tistory.com BlogIcon 소천*KA 2011.07.16 14:41 신고

    콜롬비아의 프렌치 카페... 느낌이 좋은데요. ^^

    • Favicon of https://mephisto9.tistory.com BlogIcon Demian_K 2011.07.16 19:07 신고

      네^^ 분위기가 너무 포근하고 좋더라구요. 댓글 감사드립니다^^

  7. Favicon of http://Elankim.tistory.com BlogIcon Elan Kim 2011.07.17 20:30

    안녕하세요 데미안님! 도저히 방명록을 찾을 수가 없네요;;
    (글 보기도 상당히 어렵고;; 디자인에 변화의 바람을 주시는건 어떠신지 ㅋ;)

    콜롬비아 보고타에 대해 몇가지 질문이 있어 여쭙고 싶는데 이메일 주소 좀 알 수 있을까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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